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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트로이 전쟁: 신화인가, 역사인가?

by richangel215 2025. 2. 23.

트로이 전쟁은 신들의 경쟁에서 시작되었다. 황금사과를 둘러싼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의 다툼은 파리스의 선택으로 이어졌고, 그는 아프로디테를 택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얻었다. 그러나 헬레네는 이미 스파르타 왕의 아내였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 1천 척의 함대가 트로이로 향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이를 웅장한 전쟁 서사로 기록했지만, 실제 역사와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논쟁이 계속된다. 트로이 유적의 발굴이 신화를 역사로 바꿀 수 있을까?

 

1. 트로이 전쟁의 서막

트로이 전쟁의 전설은 세 미녀의 경쟁으로 시작된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 제우스의 딸인 아프로디테와 아테나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인간 세상의 왕인 펠레우스와 바다의 님프인 테티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불화를 일으킨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식장에 황금사과를 던지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세 여신은 저마다 자신이 사과의 주인이라고 주장한다. 에리스는 제우스에게 아내와 딸들 가운데 사과의 주인을 정하라고 다그친다. 제우스는 약삭빠르게 그 요구를 거절하고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인 파리스에게 그 어려운 과제를 떠넘긴다. 헤라는 파리스에게 자신을 선택하면 엄청난 권력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아테나는 전장에서 무훈을 세우게 해 주겠노라고 제안한다. 또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파리스는 정치적 권력과 군사적 무용의 유혹을 물리치고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는데, 이것이 수백 년 동안 유명을 떨치게 되는 '파리스의 판결'이다.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건네는 파리스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건네는 파리스

 

2. 함선 1천 척을 출동시킨 미모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제우스와 레다의 딸인 헬레네였다. 안타깝게도 헬레네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와 결혼한 사이였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에게는 원래 결혼 전부터 구혼자들이 많았으므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헬레네의 계부 틴다리오스는 미리 그리스의 모든 왕과 전사들에게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결혼을 보호한다는 약속을 받아둔 터였다. 파리스는 자신이 마치 트로이 대사인 것처럼 꾸미고 스파르타로 갔다. 그가 도착하자 아프로디테는 헬레네가 파리스와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두 연인은 곧바로 메넬라오스의 재산 중에서 좋은 것들을 챙겨 트로이로 도망쳤다. 이것으로 10년을 끌게 될 전쟁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그리스는 스파르타 왕의 아내와 재산을 되찾기 위해 '1천 척의 함선'을 트로이로 보냈다.

 

3. 트로이 전쟁 : 전설인가, 역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기록된 것은 기원전 750년 경이다. 이후의 그리스 역사가들, 특히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그 이야기를 받아들여 <일리아스>에 나오는 것처럼 트로이가 헬레스폰트(현재의 다르다넬스 해협) 부근에 실제로 있었던 도시이며,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지휘 아래 그리스 군이 결집하여 트로이 전쟁을 치른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대의 학자들은 더 회의적이다.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검증하거나 트로이의 존재를 확증할 만한 역사적 기록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연합군이 오랜 기간(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기원전 1250년 무렵) 서아시아를 원정했다는 <일리아스>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아마도 노예와 자원을 탈취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4. <일리아스>의 청동기시대적 배경

기원전 13세기의 지중해 세계는 호메로스의 시대와 상당히 멀지만, <일리아스>에는 그 시대에 관한 매우 정확한 서술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일리아스>의 둘째 권에는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트로이 원정에 군대를 파견한 도시 164개의 목록이 실려 있다. 호메로스가 말하는 도시들은 대부분 그의 시대까지도 잘 알려져 있었으나, 마이클 우드가 그의 책 <트로이 전쟁을 찾아서>에서 지적하듯이 일부 도시들은 오래전에 이미 버려져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 지리학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도 있었다. 현대의 고고학과 역사 연구에 따르면, 그 도시들은 실존했고 호메로스의 목록은 정확했다.

 

5. 트로이의 실존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

그렇다면 트로이는 어떨까? 고고학자와 역사가들은 오래전부터 다르다넬스의 남쪽, 역사적으로 트로아드라고 불리던 지역에서 트로이의 유적을 찾았다(고대 트로이가 이곳을 다스렸다는 가정에서다). 관심의 초점은 호메로스가 묘사한 트로이의 지리와 대체로 일치하는 히사를리크 언덕이다. 이 유적에서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성과는 호메로스가 설명하는 트로이의 세부 모습과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부합하는 것이 많았다. 트로이를 찾는 데 밀접하게 연관된 인물은 하인리히 슐리만이다. 그는 1870~1890년에 수차례에 걸쳐 히사를리크 언덕을 발굴하여 여러 층으로 겹쳐진 도시 유적들을 찾아내고 이것들을 아홉 개 층으로 구분했다(각 층은 I~IX까지 번호가 붙었다). 칼 블레전이나 만프레트 코르프만 같은 고고학자들이 계속 히사를리크를 발굴한 결과 하위 층들이 더 발견되었다. 슐리만을 포함한 그 누구도 그곳이 실제로 호메로스의 트로이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히사를리크, 그중에서도 특히 트로이 VI와 VII(a) 층의 고고학적 발견은 호메로스가 상세히 묘사한 시대, 장소와 일치했다. <일리아스>에서 호메로스가 말한 '아름다운 망루'와 '높은 성문'의 대도시는 크고 인상적인 트로이 VI층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뚜렷하지는 않다. 더 구체적으로 호메로스는 트로이의 성벽이 튼튼한 방어 구조를 갖추었다고 말한 데 비해 실제 유적의 서쪽 측면은 보잘것없게 축조되었다. 트로이 VI를 에워싼 성벽은 두께 4미터에 높이가 9미터에 달하지만 서쪽 성벽은 엉성하다. 또한 호메로스는 시의 성문에 높은 망루가 있다고 말하는데, 고고학자들은 트로이 VI의 입구 옆쪽에 커다란 성문의 흔적을 확인했다. 히사를리크 / 트로이의 주민들이 미케네 세계와 접촉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스에서 생산된 청동기시대 유물, 특히 미케네식 도기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슐리만이 발굴한 화려한 물건들도 호메로스의 말처럼 강력한 왕권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 '프리아모스의 보물' 중에는 금반지, 팔찌, '헬레네의 보석'이라고 알려진 장식이 붙은 두 개의 웅장한 왕관 등이 있다. 슐리만의 아내 소피가 그 보석을 걸치고 찍은 사진은 슐리만의 자부심과 명성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그 유적이 사실은 트로이 II층, 즉 트로이 전쟁이 있기 1천 년 전의 것임이 밝혀졌다. 그 보물은 2차 대전 후에 갑자기 사라졌다가 1990년대에 모스크바에서 다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불에 타고 무너진 돌덩이의 흔적으로 볼 때 트로이 VI와 VII층은 급격히 파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트로이 VI는 군대가 아니라 지진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전쟁으로 파괴된 것처럼 보이는 층은 트로이 VII인데, 그래서 이 층이 호메로스의 트로이와 더 부합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트로이 VI의 입구와 망루
트로이 VI의 입구와 망루

 

6. 트로이의 목마

호메로스는 트로이에 좋은 말들이 많다고 여러 차례 말한다. 그다지 뚜렷하지는 않지만 말의 뼈와 마구가 다량으로 발굴된 것은 호메로스의 트로이와 일치한다. 트로이와 관련해서 익숙한 말은 이른바 트로이의 목마다. 그리스 군은 커다란 목마를 만들어 마치 아테나에게 바치는 선물인 것처럼 트로이 성문 앞에 놓았다. 그러고는 헬레네를 포기한다는 듯한 기색을 보이며 물러갔다. 이제 승리했다고 믿은 트로이 군은 그 전리품을 성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밤이 되자 목마의 배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밖으로 나와 성문을 열고 성 밖에서 대기하던 동료들을 끌어들였다. 급습에 대비하지 못한 트로이 병사들은 죽음을 당했고 여자들은 사로잡혀 그리스로 끌려가 노예나 첩실이 되었다. 헬레네 역시 그리스로 압송되어 남편에게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호메로스가 묘사한 트로이 목마는 어느 정도 역사적 타당성이 있다. 근동에는 기원전 13세기경에 도시 성벽을 부수기 위해 쓰는 공성 망치를 말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문헌 기록도 있고 그림도 전한다. 역사가 마이클 우드는 <일리아스>의 트로이 목마가 실은 그러한 '공성 기계'의 기억이 변형된 결과라고 추론한다.

 

7. 트로이 : 실제인가, 신화인가?

트로이 전쟁이 전설인가, 역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일리아스>에 청동기시대의 지리, 정치, 물질문화에 관해 정밀한 묘사가 많이 있고, 트로이 이야기에 부분적인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 이야기가 검증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고전학자 제러미 B. 러터의 조심스러운 결론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트로이 전쟁의 역사성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여부는 어느 쪽을 택하든 결국 신념의 문제이다."

유적 입구의 트로이 목마 재현품
유적 입구의 트로이 목마 재현품